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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계보

들어가기 전에...

이 글은 스탠포드에서 쿠엔틴 스키너Quentin Skinner 교수가 했던 강연인 A Genealogy of Liberty 를 주로 참조하여 재구성 한 것이다. 글에 나오는 주요 내용의 출처는 스키너교수에게, 영상의 저작권은 스탠포드에 있다.

자유는 철학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단골 메뉴다. 아니, 굳이 철학적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자연스레 접할 수 있는 주제다. 예컨데 가치관이 비뚤어진 사람을 살다보면 한명쯤은 만나게 되는데, 남에게 험한 말을 하거나 인신공격을 할 때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니가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하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이 상황은 발언의 자유와 정치적 올바름의 대립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다. 그런데 자유가 중요한 개념인 것에 비해 자유를 갖고 진지하게 토론 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적다. 만약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자유를 논해보자'라고 한다면 그 순간 홀로 남게 될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신봉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중요시 하므로 각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 한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다 자유민주주의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일 텐데 자유의 보장이라는 말엔 머리를 긁적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사회가 자유롭다고 한들, 우리는 사회의 여러 구조에 의해 억압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자유롭다고 느끼지 못하는데 체제가 자유민주주의인 게 무슨 상관인가 싶은 것이다. 자유란 무엇을 의미할까?

진짜, 자유란 뭘까? 자유가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 어렵다. 일반적인 대답은 자유의 부재의 예시를 들어 자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 주민들은 누가봐도 자유롭지 않다. 그럼 상대적으로 보아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은 충분히 자유로운게 아닐까? 자유를 정의하려면 고려해야 할 게 많다. 개인의 자유를 논할 때는 자유가 침해되는 그 경계선을 딱 잘라 말하기도 어렵고, 자유를 빼앗는 대상이 있어야만 자유롭지 못한 것도 아니다. 또한 자유를 침해한다는 개념 자체도 사실 굉장히 모호하다. 요점은 자유가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를 지닌 개념은 하나의 정의를 가질 수 없고 자유는 역사를 가진 개념이다. 그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역사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즉, 계보로 설명해야 한다.

여기서 계보란 단순히 기록을 말하는 게 아니다. 계보는 개념이 정의되기 위해 펼쳐져 온 논쟁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는 서양(영어권 나라) 자유주의 관점에서 옛 정치, 철학가들이 개인의 자유를 어떤 식으로 정의하고자 했는지 알아볼 것이다. 아래 소개되는 자유의 정의는 현대까지 살아남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읽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체계적으로 사회를 분석하고 현대적으로 자유의 정의를 논했던 기록이 17세기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당시 철학자였던 토머스 홉스는 러바이어던Leviathan 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한 나라의 시민으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이렇게 정의한다.

  1. 선택권이 있을 때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 또는 힘power을 가졌고,
    • 여기서 능력은 불가능한 행위는 무시한다. 예를 들어 물 위를 걷는 일처럼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건 무시한다.
  2. 그 힘을 행사하는데 외부의 방해interference가 없는 경우.

이 정의는 자유가 무언가의 부재로 정의되는 흑색 개념negative liberty이라는 관점을 열었다. 여기까지는 별로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언어가 그렇다. 무언가를 정의하려면 문장의 의미를 확실하게 전달해야 한다. 홉스의 정의에 모호한 부분이 어디인지 찾아보자.

홉스는 자유를 외부의 방해 유무로 정의했다. 그러니까 외부의 방해가 뭔지 명확히 정의되어야 한다. 홉스도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홉스는 방해를 물리적인 force을 가하여 다른 행위 불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즉, 정신적인 압박이나 의지를 꺾는 것은 자유의 침해로 보지 않았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규칙을 따르고 있더라도 홉스가 보기에 나는 여전히 자유로운 거다. 스스로 따른 규칙이니 언제든 그 규칙을 어길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홉스 관점은 자유의 논쟁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황인 강도이야기로 더 명확하게 설명된다.

강도가 내 집에 침입하여 머리에 총을 겨누고 가진 것을 모두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웃기지만 이런 상황에서조차 홉스는 내게 자유가 있다고 말할 것이다. 홉스가 보기에 나는 내 목숨과 재산 둘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인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강도한테 가진 것을 다 준다고 한다면, 그건 내가 내 목숨을 살리려고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내린 게 아니고, 온전하게 자유인으로서 재산을 주는 선택을 한 것이다.

홉스의 정의는 얼핏 보면 엉뚱하지만, 무언가의 부재로 정의하는 흑색 개념의 관점을 열었다는 점에서 존중받는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까지도 그를 옹호하는 자유주의 정치 철학가가 많다. 홉스가 지금까지도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존 로크John Locke

토머스 홉스의 정의는 솔직히 너무 간단해서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봐도 적용하기 힘든 상황이 많다. 자유를 논함에 있어 의지의 자유를 아예 배제해 버렸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다행히 홉스의 정의에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낀 사람은 우리가 처음이 아니었다.

17세기 말, 철학자겸 의사였던 존 로크는 홉스의 정의에 의문을 품었다. 그가 느끼기에 의지will강제coersion되는 상황은 자유와 거리가 멀었다. 다시 한번 위의 강도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위와 같은 상황에 자신의 목숨 대신에 재산을 택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답은 당연히 '아니오'다. 로크는 이처럼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게ineligible 분명할 때도 자유롭지 않다고 말한다.

로크의 정의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로크가 강제라는 새로운 용어 등장시켜놓고 홉스가 외부의 방해를 설명한 것처럼 강제를 확실하게 설명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로크는 자신이 명백히 강제라고 여기는 몇 가지 예시만 주었다:

  • 위협을 당하는 경우.
  • 약속한 경우.
  • 제안을 받는 경우.
  • 뇌물을 받는 경우.

그런데 예시를 살펴보면 뭔가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뇌물을 받는 경우? 로크는 왜 뇌물을 받는 경우가 의지가 강제되는 상황이라 판단했을까?

아쉽지만 거기에 대한 답은 없다.

그러나 로크가 자신의 새로운 관점에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않은 덕분에 철학자들이 의지가 강제된다는 새로운 개념을 두고 오랜 기간 논쟁을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철학자들은 의지가 강제되는 것을 넘어 의지 자체가 굽혀bending지는 경우를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의지를 굽히는' 것에 대해 명료한 정의를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오랫동안 등장하지 않았다.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그리고 오랜 시간 끝에 18세기의 철학자, 법학자이자 사회 개혁가였던 제러미 벤담이 나타난다. 벤담은 의지의 굽힘이 다음 두 갈래로 나뉜다고 주장한다:

  1. 요구에 동의함으로써 보상을 받는 경우.
  2. 요구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손해를 보는 경우.

벤담은 두 번째 경우만이 로크가 말한 의지가 강제되는 경우라 설명했다. 벤담이 보기에 두 번째 경우는 위협threat 때문에 대상이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지를 꺾을 수 있는 위협은 어떤 조건을 만족할까? 벤담은 다음의 특징을 나열한다. 위협은:

  • 그럴싸해야 한다credible
    • 정말 나에게 피해를 줄 것 같다.
  • 피해가 심각해야 한다serious
    • 피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 임박해야 한다immediate
    • 위협을 쉽게 피할 수 없다.

이 정의는 꽤 명쾌하기 때문에 많은 현대 철학자들이 인용하거나 차용한다. 그러나 한 철학자에 의해 허점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강제성을 띨 수밖에 없는 보상도 존재한다는 게 그 허점이었다. 그러니까 위의 의지의 굽힘에 대한 설명 중 두 번째 경우만이 의지가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벤담의 정의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강제성을 논하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고, 자유의 계보를 한층 더 확장했다.

존 스튜어트 밀 John Stuart Mill

이때까지 자유의 정의는 외부의 방해로 인해 물리 혹은 정신 및 의지가 선택의 폭을 줄이는 방식으로 정의되었다. 이런 정의는 조금 복잡하긴 해도 일관성이 있으므로 자유가 거론되는 많은 정치 철학 논쟁에 사용되었다.

그런데, 19세기에 이 문제를 더 꼬아버리는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존 스튜어트 밀이다. 지금까지 자유의 계보를 보며 그가 떠올린 의문은 하나였다. 자유를 방해하는 무언가가 꼭 밖에만 있을까?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자유를 억압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자유의 정의에는 자기자신self이 등장한다. 밀은 스스로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를 다음으로 설명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라 한다.

  1. 열정passion에 사로잡힌 경우
    • 여기서 열정은 이성적인 판단의 반대를 의미한다.
      • 즉, 화가 났거나 순간의 감정 때문에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우
  2. 거짓된 선택의 자유inauthenticity
    • 사람들은 자기가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 문화, 관습에 맞춰 산다. 그러다 보면 결국 관습을 배반하지 않는 선택만이 자기가 가진 선택의 폭의 전부라고 스스로까지 속이게internalize 된다.
    • 우리는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공동체에 초점두고 살게 된다.
  3. 거짓 의식false consciousness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 알다시피 인도는 아직도 계급주의 사회다. 각 계급층의 사람들은 철저히 계급에 맞게 생각하고 생활한다.
  4. ...

아까 말했듯 이게 전부는 아니다. 스키너 교수 왈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다른 가능성은 우리의 자유로운 상상에 맡기겠다고 했다.

단지 하나의 가짓수가 더 추가되었을 뿐인데도 훨씬 복잡해진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의 계보를 다이어그램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토머스 힐 그린Thomas Hill Green

이 정도면 대부분의 자유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19세기가 끝나갈 즈음 자유의 정의가 전혀 완성된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영국 학자들이 등장한다. 그 중 한명이 우리가 얘기할 토머스 힐 그린이다.

지금까지 자유의 계보는 모두 무언가의 방해로 정의되었다. 즉, 그 점에는 학자들끼리도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그린은 이때까지의 정의와는 거리가 먼 딴소리를 하면서 계보의 방향을 확 틀어버린다.

자신의 본질 혹은 본성을 알고자하는 사람만이 진정 자유롭다.

그린의 정의에는 방해는 없고 오로지 자기실현self-realisation만 있다. 얼핏 보면 단순하지만, 아예 판도가 다른 정의이기 때문에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 바로 눈에 띈다. 대체 그린이 말하는 자기실현, 본질 혹은 본성의 추구가 뭐냐는 부분이다.

그린은 자기실현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했다:

  1. 신 혹은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service to god"
    • 그러나 이건 정치학이 아니므로 논외로 한다.
  2. 인간으로서 인류에게 봉사"service of fellow human beings"
    • 인간과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자유주의에서는 당연히 2번의 정의를 따른다. 우리의 본성에 정치적인 기질이 있기 때문에 이에 맞춰 우리가 서로에게 헌신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이 관점을 옹호하는 현대 철학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단연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다. 한나 아렌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예 "자유는 바로 정치 그 자체다""Freedom is politics"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을 최대한 자유롭게 하고자 정치를 하는 것 그 자체가 자유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의 의미도 이것과 비슷한 것 같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

기존의 토대를 탈출하려는 운동은 예술계에서만 퍼진 게 아니었다. 19세기가 지나자, 그린처럼 아예 패러다임이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정치 철학에도 계속 등장한다. 그 중 한 명이 20세기 러시아 정치 철학자인 이사야 벌린이다.

벌린은 언어가 때로는 애매모호하며, 때로는 부적절하게 쓰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상황에 따라 단어가 가지는 어감이나 의미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렇게 생긴 다른 개념들이 때로는 합쳐지고, 상충하기도 하며 인간의 모순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그는 자유 역시 언어의 특성상 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예컨데 무언가로부터의 자유와 무엇을 할 자유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로써 오랫동안 자유 계보의 근간이 되었던 흑색 개념으로써의 자유는 백색 개념을positive liberty 받아들인다.

난 무엇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

이것은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바라보는 '포지티브' 자유를 얘기한다.

두 자유의 개념은 긍정과 부정 혹은 백과 흑으로 설명되긴 하지만 서로 상호배제적인 것은 아니다. 충돌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언어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쿠엔틴 스키너Quentin Skinner

이 글의 기초가 되는 강의를 제공한 스키너 교수 역시 꽤 레디컬한 생각을 제시한다. 스키너는 자유의 정의를 옛날 로마법에서 찾고자 했다. 알다시피 그 시절 로마는 자유인과 노예를 구분했다. 그는 무엇이 노예를 자유롭지 않게 하는가를 통해 자유를 논한다.

로마에서 자유인의 생활과 노예의 생활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그 둘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주어진 역할에 맞춰 살아야 했던 자유인들이 더 자유롭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자유인과 노예를 구분 짓는 단 한 가지는 바로 주인의 존재 혹은 권한에 의존dependent한다는 사실 뿐이었다. 다시 말해 자기가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면 로마에선 자유로운 몸이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의존적이라면 언제고 당신이 추구하는 방향을 막아설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 자신의 의지를 맡기는 순간, 그 사람이 당신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지게 됨으로써 당신은 모든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또, 자기가 누군가에게 의존적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사람 앞에서 자신을 스스로 검열하며 살아가게 된다. 자신에게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항시 순응하며 사는 것이다.

스키너는 이 의미가 적용되는 그룹을 몇몇 설명한다:

  1. 왕정 시대의 시민
    • 시민은 왕국에 종속하므로 자유롭지 않다.
  2. 여성
    • 이전의 여성들은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했고, 사회에 팽배했던 가부장제 때문에 자율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다.
    • 과거 존 스튜어트 밀은 아예 노골적으로 여성과 노예의 차이를 모르겠다며 가부장제를 비판했었다.
  3. 기타 현대인들
    • 사장의 권력에 종속된 직원들
    • 사생활과 안전을 보장하는 대신 주권에 종속
  • 이는 권력의 행사보단 존재 자체로도 자유를 억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권력이 언제 어떻게 사용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계보학은 개념에 대한 비판이다. 왜 자유의 계보을 공부해야 할까? 스키너 교수님의 말을 인용하자면:

  1. 우리는 자유를 생각하는 방법이 하나뿐이라고 주입되어 왔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자유의 계보에 등장하는 정의들은 모두 일관성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
  3. 그러나 각각의 정의들은 하나로 합쳐질 수 없기 때문에 자신만의 정의를 택해야 한다.
  4. 가르치는 입장에서 사상을 대신 선택하여 주입하는 건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를 정확히 알려 주어야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스키너 교수는 우리가 자유의 개념을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그 선택지를 가르치고 싶었다고 한다.

시간이 남는 사람은 원본 영상을 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참조

  1. Berlin, I. (1958). Two concepts of liberty.
  2. Postema, G. J. (1979). Bentham on Liberty: Jeremy Benthams Idea of Liberty in Relation to his Utilitarianism. Political Theory, 7(2), 287-291. doi:10.1177/009059177900700211
  3. Skinner, Q. (2016, December 01). Retrieved May 22, 2019, from https://www.youtube.com/watch?v=PjQ-W2-fKUs
자유의 계보